방학마다 미국에 온 아이들, 영어는 정말 늘었을까?
방학마다 미국에 온 아이들, 영어는 정말 늘었을까?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방학이면 미국에 있는 친정에서 한 달 반에서 길게는 두 달 넘게 지내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그렇게 미국을 자주 다니면 아이들 영어가 많이 늘어?"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미국에서 보낸 시간은 분명 영어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몇 달 미국에 다녀왔다고 갑자기 영어를 잘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알아듣지도 못했고,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영어를 못 알아들어 친구들과 노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고, 화상영어 25분 동안 Yes, No, I don't know만 반복하다 끝난 적도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 아이들의 영어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천천히 변했습니다.
그리고 돌아보니 그 순서도 제가 한국에서 흔히 생각했던 영어 학습 순서와 조금 달랐습니다.
듣는 시간이 아주 오래 쌓인 뒤 말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 다음에야 본격적으로 파닉스와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큰아이가 AR 3점대 챕터북을 스스로 읽고 어린이 영화를 영어로 보며 내용을 대부분 이해할 정도가 되었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결코 한두 번의 미국 체류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영어가 목적이 아니었다
첫 미국 방문 때는 아이들이 너무 어렸습니다.
첫째는 네 살 정도였고 둘째는 14개월 정도였습니다. 한국에서도 특별히 영어를 많이 접하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때 미국에 온 이유도 영어교육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친정 가족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두 번째로 장기간 미국에 머물렀을 때는 아이들에게 영어 영상을 틈틈이 보여주고 있었지만 실제 영어를 듣고 이해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표현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큰아이가 한국 나이로 여섯 살, 둘째가 네 살이었을 때 미국에서 두 달 동안 유치원을 다녔습니다.
그때도 영어만 사용하는 환경에 바로 보내는 것이 부담스러워 필요할 때 한국어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치원을 선택했습니다.
수업은 미국인 선생님이 영어로 진행했지만 아이가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어로 보조 설명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 시기는 영어를 '잘하게 된 시기'라기보다 영어가 들리는 환경에서 생활해보기 시작한 시기에 가까웠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영어를 못해서 아이도 답답해했다
큰아이의 영어 부족이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미국 썸머캠프에 보냈을 때였습니다.
캠프에서 코치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표현하기도 어려웠습니다.
Red Light, Green Light 같은 간단한 게임에서도 신호를 반대로 이해해 다른 아이들과 반대로 움직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부모인 저만 걱정한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도 답답해하고 속상해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영어로 말할 기회를 계속 만들어주고 싶어 화상영어도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기억나는 첫 화상영어 수업이 있습니다.
25분 동안 선생님이 질문하면 아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거의 정해져 있었습니다.
"Yes."
"No."
"I don't know."
이 세 가지 대답을 하다 25분이 거의 끝났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영어를 어느 정도 들었다고 해서 바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이 안에 말할 수 있는 영어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대화를 시키려고 하니 아이에게도 25분이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초1 겨울, 처음으로 '이 아이가 영어를 듣는구나' 느꼈다
변화를 처음 확실하게 느낀 것은 큰아이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무렵이었습니다.
특별한 시험을 본 것도 아니고 아이가 갑자기 영어로 긴 문장을 말한 것도 아닙니다.
제가 미국인 형부와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큰아이가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아, 얘가 이제 영어를 듣는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우리 아이에게는 말하기보다 듣기가 먼저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영어 영상을 틈틈이 보여줬고 미국에 오면 가족과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들었습니다. 캠프와 유치원에서도 영어를 접했습니다.
각각의 경험만 놓고 보면 영어 실력이 크게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그 시간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들리는 영어의 양이 달라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큰아이 2학년 여름방학 무렵부터는 짧은 문장을 직접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듣기가 먼저 열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말이 조금씩 따라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파닉스는 오히려 초등학교 3학년 무렵 시작했다
우리 아이의 영어 학습 순서에서 제가 한동안 걱정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파닉스를 비교적 늦게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큰아이와 집에서 본격적으로 파닉스를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주변을 보면 영어유치원을 졸업하거나 저학년부터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이미 읽기와 쓰기를 상당히 앞서가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그런 방식으로 영어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영어유치원을 다니지도 않았고 사립초등학교를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듣기만 많이 하고 읽기를 너무 늦게 시작한 것은 아닐까' 걱정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리딩을 시작하니 재미있는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스펠링을 100%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는데 아이가 이미 알고 있는 영어 단어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오랫동안 들었던 단어가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에 읽다가 익숙한 소리와 단어를 만나면 문맥과 함께 유추해서 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파닉스를 배우면서 그동안 귀로 알고 있던 소리와 글자가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AR 3점대의 챕터북을 혼자 읽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영어유치원을 졸업하고 대형 영어학원을 오래 다닌 또래와 비교하면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아이와 비교하기보다 우리 아이가 영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지금의 아이도 자신의 영어에 만족하고 있고 저 역시 현재까지의 과정을 만족스럽게 보고 있습니다.
영어를 '공부'보다 '언어'라고 생각하는 아이가 됐다
제가 반복된 미국 생활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느끼는 부분은 시험 점수나 읽기 단계가 아닙니다.
아이에게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큰아이는 자신의 영어 발음에 자신감이 있는 편이고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특별한 시험처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영화관에도 자주 갑니다.
현재 큰아이의 경우 어린이 영화를 영어로 보면 제가 느끼기에는 내용의 80% 이상은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것은 별도의 시험으로 측정한 수치가 아니라 아이와 영화를 보고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제가 체감하는 정도입니다.
둘째는 형보다 언어 습득 속도가 조금 느린 편입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무언가를 원할 때 "Me want milk."처럼 문장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자연스럽게 "I"로 문장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둘째에게는 형과 다른 장점도 있습니다.
문법이 맞는지, 단어가 정확한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마트에서도 원하는 것이 있으면 영어로 스스럼없이 이야기합니다. 틀리면 어떡하지 하고 머릿속에서 문장을 완성한 뒤 입을 여는 것이 아니라 일단 말을 합니다.
저는 이 태도 역시 언어를 배우는 데 상당히 중요한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영어로 말해보라면 입을 닫는데 미국에 오면 달라진다
아이들을 보면서 가장 신기한 것은 장소에 따라 영어를 사용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한국에서 친척들이 "영어로 한번 말해봐"라고 하면 아이들은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해 이모부를 만나면 바로 영어로 이야기합니다.
마트나 캠프처럼 영어가 필요한 장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에게 영어는 누군가에게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이야기하기 위해 필요한 언어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만큼 영어를 사용해야 하는 순간에 입을 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화상영어 선생님 앞에서 Yes, No, I don't know만 반복하던 아이를 생각하면 지금은 분명 많이 달라졌습니다.
미국만 오간다고 영어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들의 영어가 모두 미국 체류 덕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틈틈이 영어 영상을 보여줬고 파닉스는 집에서 함께 공부했습니다.
아이들이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는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필요한 영어 학습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영자신문과 문법 수업을 듣고 있고 한 학기 정도 뒤에는 라이팅 수업도 시작할 예정입니다.
듣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읽기, 문법, 쓰기까지 모두 채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집 영어교육은 두 가지를 함께 가져가려고 합니다.
- 영어를 실제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언어로 받아들이는 경험
- 읽기, 어휘, 문법, 쓰기처럼 학습이 필요한 영역을 체계적으로 보완하는 것
둘 중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미국 오가는 비용으로 영어학원을 보내는 게 낫지 않냐는 질문
주변 지인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도 종종 듣습니다.
그동안 미국을 오간 항공료와 체류에 들어간 비용을 생각하면 그 돈으로 영어유치원과 애프터스쿨을 보내는 것이 더 저렴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계산만 해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두 가지를 같은 비용으로 비교하지 않습니다.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처음부터 영어교육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이모와 이모부, 사촌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캠프에 가고 친구를 만나고 도서관에 가고 마트에서 필요한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어는 별도의 수업시간에만 사용하는 과목이 아니라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언어였습니다.
특히 실제 미국인과 그 자리에서 대화하고, 상대방의 말을 이해해야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바로 표현해야 하는 경험은 교실에서의 영어와는 다른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영어 실력만 놓고 미국 체류 비용의 가치를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 다른 문화에서 생활한 경험, 새로운 친구를 만난 일, 그리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한 시간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영어에 대한 마음이었다
우리 아이들의 과정을 돌아보면 아주 깔끔한 영어교육 성공담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했고, 캠프에서는 친구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해 속상해했습니다.
화상영어를 너무 일찍 시작했다가 25분 동안 제대로 된 대화를 거의 하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듣기가 먼저 열렸고 말하기가 뒤따랐습니다. 그리고 파닉스와 본격적인 읽기는 그보다 더 늦게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문법과 쓰기처럼 앞으로 채워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만족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영어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야만 입을 여는 것도 아니고 영어를 특별한 사람만 사용하는 언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필요하면 말하고, 들리면 이해하고, 모르면 다시 물어보면 되는 하나의 언어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흔히 영어를 배우는 순서와 다른 것 같아 '이렇게 해도 되는 걸까'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아이들에게는 귀가 먼저 열린 시간이 충분히 있었던 것이 오히려 잘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방학마다 미국에 왔다고 해서 영어가 저절로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영어를 실제로 듣고 사용해야 하는 시간이 여러 해에 걸쳐 반복됐고, 한국에서 읽기와 학습을 보완하면서 그 경험들이 조금씩 연결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저에게 "미국에 자주 가면 아이 영어가 늘어요?"라고 묻는다면 이제는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몇 달 다녀온다고 갑자기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영어를 공부가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로 받아들이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 이 글은 두 아이와 방학마다 미국에서 장기간 생활해온 우리 가족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아이의 언어 습득 속도와 학습 방식에는 개인차가 있으며, 같은 환경에서도 결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특정 영어교육 방법의 효과를 보장하거나 다른 교육방식보다 우수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