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 달 살기와 일주일 여행은 무엇이 달랐을까
미국 한 달 살기와 일주일 여행은 무엇이 달랐을까
아이들과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솔직히 말하면 여행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첫째는 4살, 둘째는 14개월이었고 저는 육아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친정에 가서 잠시라도 기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마침 언니의 아이도 둘째보다 5개월 늦게 태어나 비슷한 또래의 아기를 함께 키우는 시기였습니다.
말 그대로 공동육아였습니다.
아이들을 같이 먹이고 재우고 놀게 하면서 저는 친정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첫 미국 방문에서 제가 가장 필요했던 것은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당탕탕 첫 88일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큰아이가 6살, 둘째가 4살이 되었을 때 다시 미국에 왔습니다.
두 번째부터는 느낌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여행을 온 것이 아니라 집만 바뀐 채 다시 생활을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두 번째 방문부터는 관광보다 생활이 되었다
아이들이 조금 자란 두 번째 방문부터는 한국에서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음식을 직접 준비하고 빨래를 하고 장을 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이고, 외출할 일이 있으면 나갔다가 돌아와 저녁을 먹였습니다.
집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부모가 해야 할 일은 그대로였습니다.
다만 우리 가족은 호텔이나 에어비앤비가 아니라 미국에 사는 가족의 집에서 지냈기 때문에 장기체류에 필요한 환경이 이미 갖춰져 있었습니다.
세탁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고 주방에서 아이들 음식을 직접 만들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필요한 것이 생기면 주변 마트에서 사면 됐습니다.
숙박비가 따로 들지 않는 것도 우리 가족에게는 큰 차이였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경험은 숙소를 직접 예약해 한 달 살기를 하는 가족과는 비용 구조가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비슷할 것 같습니다.
일주일 여행에서는 여행지와 식당을 먼저 생각하지만 한 달 이상 머물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을지, 세탁은 언제 할지, 장을 어디서 볼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돈도 관광지보다 생활에 더 많이 쓰게 됐다
짧은 미국 여행에서는 입장료와 호텔, 외식비 같은 관광비용의 비중이 큽니다.
반면 우리 가족의 장기체류에서는 돈을 쓰는 곳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장을 보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고, 간식과 식재료를 삽니다.
아이들 옷도 미국에서 구입하는 편이라 처음부터 한국에서 많이 가져오지 않습니다.
반대로 속옷이나 내복처럼 평소 한국 제품을 더 편하게 사용하는 것은 한국에서 충분히 챙겨옵니다.
외식은 매일 하지 않습니다.
주로 집에서 밥을 먹고 교외로 하루 종일 나갔거나 저녁시간을 넘겨 집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밖에서 먹는 편입니다.
미국을 여러 번 오가면서 유명한 관광지도 대부분 한 번 이상 다녀왔기 때문에 이제는 미국에 왔다고 일부러 매일 관광 일정을 만들지도 않습니다.
장기체류에서 실제로 반복해서 돈을 쓰는 곳은 오히려 마트, 도서관 가는 길의 간식, 아이들의 활동비, 영화관이나 볼링장 같은 평범한 생활 속 장소들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이제 미국을 특별한 여행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어디를 데려가도 처음 보는 곳이었습니다.
박물관도 새로웠고 놀이터도 새로웠고 마트조차 재미있는 구경거리였습니다.
하지만 방문이 반복되면서 아이들도 달라졌습니다.
이제 어떤 박물관에 가면 어느 층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자주 가는 놀이시설에 가면 무엇부터 할지 스스로 정합니다.
미국에 왔다는 사실 자체가 특별하기보다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특정한 일을 더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학원이나 일상 루틴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집에서 영화 한 편을 보는 것도 쉽지 않을 때가 있지만 미국에 오면 일주일에 두세 번씩 가족끼리 Movie Night을 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에 트리 아래 가득 쌓인 선물을 받는 것도 좋아합니다.
미국에서 해본 볼링이나 미니골프 같은 활동도 자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지금 아이들에게 미국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유명 관광지 이름보다 이런 일상적인 경험이 먼저 나올 때가 있습니다.

장기체류의 가장 좋은 점과 가장 힘든 점
오래 머문다고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가족이 한 집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면 자연스럽게 서로 맞춰야 할 일이 생깁니다.
아이 셋이 함께 생활하다 보면 조카와 우리 아이들이 싸울 때도 있습니다.
부모마다 아이를 대하는 방식이나 생활 습관이 조금씩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별일 아닌 것에도 서로 속상해질 수 있습니다.
며칠 여행이라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일이지만 한두 달을 같이 살면 생활의 작은 차이까지 보입니다.
저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것은 한국에 있는 남편과 떨어져 있는 시간입니다.
아이들과 제가 오래 미국에 있으면 남편 역시 가족을 보고 싶어 하고 저도 한국에 있는 남편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반대로 제가 장기체류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도 결국 가족입니다.
한국에서 살다 보면 친정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와 한 집에서 한 달씩 함께 생활할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여름과 겨울에 미국을 오가면서 일 년에 합치면 몇 달을 친정 식구들과 함께 보낼 때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이모와 이모부, 사촌과 함께 생활합니다.
저 역시 친정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언니와 일상을 나눕니다.
처음 육아에 지쳐 친정을 찾아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 부분은 여전히 제가 미국에 오는 가장 큰 힐링 포인트입니다.
아이들이 얻은 것은 영어만은 아니었다
장기체류를 이야기하면 가장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아이들의 영어입니다.
실제로 아이들은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영어를 자연스럽게 듣고 실제 사람과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거의 알아듣지 못했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캠프에서 친구와 이야기하고 마트에서 필요한 것을 직접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서 다양한 교육환경을 선택하는 가족도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미국에서 보내는 시간은 학원 수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어가 실제 생활에서 사용되는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을 단순히 영어교육 비용과 비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이들은 영어만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는 방식도 경험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공원에서 처음 보는 아이와 놀고, 썸머캠프에 가고,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받고, 박물관에서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질문하는 아이들을 봤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에 있는 가족과 긴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래서 장기체류에서 아이들이 얻은 것을 영어 한 가지로 설명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첫 미국행을 준비하던 나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
첫 미국 방문을 준비하던 제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아이 둘을 데리고 미국에 입국한다는 사실만으로 긴장했습니다.
첫 입국심사를 앞두고 너무 떨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 와중에 아이 여권 하나가 보이지 않아 순간 혼비백산한 적도 있습니다.
어디에 떨어뜨렸는지 찾아보니 여권은 유모차 아래 짐칸에 있었습니다.
지금의 제가 그때의 저를 만난다면 가장 먼저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여기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야. 너무 겁먹지 마."
필요한 물건이 없으면 마트에서 사면 되고 아이가 힘들면 하루 쉬면 됩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생활했던 곳에서는 어린아이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우왕좌왕할 때 기다려주거나 먼저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론 미국 생활이 항상 편하거나 모든 사람의 경험이 같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첫 장기체류를 앞두고 있던 저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필요 이상으로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육아에 지쳐 친정에 기대고 싶어서 시작한 미국 방문이었습니다.
그 뒤 두 번째, 세 번째 방문을 이어가면서 여행은 점점 생활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미국에 오면 유명 관광지를 몇 군데 가야 한다는 생각보다 장을 보고 도서관에 가고 아이들의 스케줄을 맞추며 하루를 보냅니다.
한국에서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집이 바뀌고 언어가 달라지고 함께 사는 가족이 늘어났을 뿐,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공부시키고 같이 웃고 싸우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가족에게 미국은 특별한 관광지라기보다 방학 동안 잠시 다른 일상을 살아보는 곳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일상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몇 년째 같은 장소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제가 여러 번 미국을 오가며 얻은 가장 큰 기억 중 하나입니다.
※ 이 글은 미국에 거주하는 가족의 집에서 아이들과 여러 차례 한 달 이상 체류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숙박 환경과 비용, 생활 방식은 체류 형태와 가족 상황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