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미국 장기체류, 9번 다녀보니 짐이 달라졌다
아이 둘을 데리고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첫째는 4살, 둘째는 14개월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방학마다 미국에 오기 시작해 어느새 방문 횟수가 9번을 넘었습니다.
한 번 오면 짧아도 한 달 반 정도, 길게는 88일가량 머물다 보니 일반적인 미국 여행과는 짐을 싸는 기준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쓰던 것은 한국에서 최대한 가져가야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번 생활해 보니 미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물건까지 한국에서 들고 올 필요는 없었습니다.
반대로 아이들이 커서 유모차와 기저귀가 사라진 자리에는 책과 문제집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미국 짐은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계속 달라지고 있습니다.

첫 미국행, 유모차 때문에 오히려 짐을 많이 가져갈 수 없었다
첫 방문은 겨울이었습니다.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두 아이를 태울 수 있는 유모차를 가져갔고, 비행기 탑승구까지 유모차를 사용했습니다.
대한항공의 가족 지원 서비스를 이용해 이동에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유모차에 어린아이 둘까지 있으니 가져갈 수 있는 짐에는 자연스럽게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캐리어 하나는 미국에 계신 부모님과 언니네 부부에게 가져다줄 한국 물건으로 채웠습니다. 결국 우리 가족이 사용할 물건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 위주로 골라야 했습니다.
둘째가 사용할 기저귀는 우선 일주일 정도 사용할 양을 챙겼고, 먹을 수 있는 일반식 반찬과 아이들 비상약, 바디워시 같은 익숙한 생활용품도 가져갔습니다.
첫 방문이 겨울이었던 것도 짐을 늘리는 이유였습니다. 한국의 겨울을 생각하고 아이들의 두꺼운 패딩까지 챙겼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첫 방문 때의 짐에는 '미국에서 구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꽤 많이 들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저귀도 바디워시도 미국에 다 있었다
막상 미국에서 생활해 보니 아이들 생활용품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둘째는 또래보다 잘 먹고 체격도 큰 아기였습니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기저귀보다 더 큰 사이즈가 필요할 때가 있었는데, 오히려 미국에서 큰 사이즈의 기저귀를 구하기가 편했고 아이에게도 잘 맞았습니다.
우유 역시 현지에서 흰우유를 비롯해 아이에게 맞는 제품을 골라 사 먹였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한국에서 사용하던 바디워시까지 챙겨 왔습니다. 하지만 미국에도 어린 조카가 있었기 때문에 조카가 사용하는 제품을 함께 쓰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비싸게 느껴지는 제품도 있었지만 몇 번 생활해 보니 결론은 간단했습니다.
웬만한 육아용품과 생활용품은 미국에서도 살 수 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부터는 현지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으로 캐리어를 채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 비상약은 지금도 챙긴다
반대로 여러 번 미국에 와도 계속 한국에서 준비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 비상약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한국에서 감기에 자주 걸리고 아팠던 경험이 있어 장기간 집을 떠날 때 약을 준비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우리 가족의 경우 출국 전 아이 상태를 보면서 소아과에서 진료를 받고, 장염이나 목·코 증상이 있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의사와 상의해 필요한 약을 준비해 왔습니다. 평소 아이들에게 사용하던 해열제 등도 함께 챙기는 편입니다.
다만 이것은 우리 가족의 준비 방식일 뿐, 다른 아이에게 같은 약이 필요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이의 나이와 건강 상태에 따라 필요한 약과 용량이 다를 수 있으므로 출국 전에 의료진과 상담해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걱정해서 약을 챙겨 오는데 정작 미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크게 아프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래도 한 달 반 이상 집을 떠나 있으니 비상약만큼은 지금도 캐리어에서 빼지 못합니다.
유모차와 기저귀가 빠진 자리에는 책과 문제집이 들어왔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짐은 육아용품입니다.
이제 유모차도, 기저귀도, 이유식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캐리어가 가벼워진 것은 아닙니다.
그 자리를 책과 문제집이 차지했습니다.
한 달 반 이상 미국에 머물다 보면 방학이라고 해도 한국에서 하던 공부를 완전히 멈추기가 신경 쓰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풀던 문제집과 한글 독서용 책을 가져오고, 온라인이나 패드로 하는 수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태블릿도 챙깁니다.
목표는 한국에서 하던 집 공부 루틴을 미국에서도 최대한 유지하는 것입니다.
물론 엄마의 계획과 아이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아이들에게 미국은 '공부하러 온 곳'이 아니라 '방학에 쉬러 온 곳'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계획했던 루틴이 미국에 오면 조금씩 무너지기도 합니다.
문제집을 가득 챙겨 온 캐리어를 볼 때마다 계획대로 공부하기를 바라는 엄마와 방학을 즐기고 싶은 아이들의 작은 줄다리기가 시작됩니다. 여러 번 와도 이 부분만큼은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한 달 반을 살아도 옷은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장기체류라고 하면 옷을 많이 준비해야 할 것 같지만 우리 가족은 오히려 옷을 많이 가져오지 않는 편입니다.
친정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세탁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같은 옷을 세탁해서 다시 입으면 됩니다. 필요한 옷이 생기면 현지에서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Polo Ralph Lauren, Gap, Banana Republic, Patagonia 같은 브랜드의 옷을 현지에서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환율과 할인 시기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예전에는 한국보다 가격이 좋다고 느껴 아이들 옷을 미국에서 많이 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체류 기간이 길다 = 옷도 체류 일수만큼 많이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탁 환경이 있는지, 현지에서 필요한 물건을 쉽게 살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꼭 가져오는 것은 따로 있다
여러 번 오가면서 우리 가족에게는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가져올 것'과 '미국에서 살 것'의 기준이 생겼습니다.
현재 제가 한국에서 주로 챙기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아이들에게 필요한 비상약
- 방학 동안 풀 문제집
- 한글 독서용 책
- 온라인 학습에 사용하는 태블릿
- 평소 사용하는 화장품
- 익숙한 헤어케어 제품
여기에 조금 다른 짐도 있습니다.
멸치, 미역, 김, 떡처럼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가져다주고 싶은 한국 식재료나 먹거리입니다. 미국에도 한인마트가 있어 대부분의 한국 식품을 구할 수 있지만, 가족이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출국 전에 부탁받아 챙겨가는 편입니다.
그래서 미국에 올 때 캐리어는 우리 가족의 여행가방이면서 동시에 한국과 미국에 있는 가족 사이를 오가는 작은 택배 상자 같은 역할도 합니다.
호텔이나 에어비앤비 장기체류와는 준비물이 다를 수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분명히 하고 싶은 점이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미국에 올 때 호텔이나 에어비앤비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언니네 집에서 지냅니다.
세탁을 할 수 있고 기본적인 생활용품과 주방용품이 이미 갖춰져 있습니다. 주변에는 한국마트도 있어 필요한 한국 식재료를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호텔이나 에어비앤비에서 한두 달 생활하는 가족이라면 필요한 준비물이 우리 가족과 상당히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경험하지 않은 숙박 형태의 준비물까지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기보다는, 이 블로그에서는 제가 실제로 해본 범위 안에서 기록하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올 때보다 돌아갈 때의 짐이었다
미국을 여러 번 오가면서도 매번 반복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는 올 때보다 짐이 늘어납니다.
처음부터 알고 있는데도 막상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아이들 옷도 사고 생활용품도 사고 가족에게 받은 물건도 생깁니다.
그래서 이제는 출국할 때 캐리어를 완전히 채우지 않고 돌아갈 때 늘어날 짐의 공간까지 생각하려고 합니다.
미국에 아예 두고 가는 물건도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다음 방문 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은 가족 집에 보관하기도 하고, 작아진 둘째 옷은 둘째보다 5개월 늦게 태어난 조카에게 물려주고 온 적도 있습니다.
여러 번 오가다 보니 짐을 싸는 기준도 '혹시 필요할지 모르니까 가져가자'에서 '정말 한국에서부터 가져가야 하는가?'로 바뀌었습니다.
9번의 장기체류 후 생긴 우리 가족의 짐 싸기 기준
지금은 물건 하나를 캐리어에 넣기 전에 세 가지를 생각합니다.
- 미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가?
- 한 달 반 동안 실제로 여러 번 사용할 것인가?
- 한국으로 돌아올 때 늘어날 짐을 감안해도 가져갈 가치가 있는가?
세 질문에 답하다 보면 의외로 가져가지 않아도 되는 물건이 많습니다.
첫 미국행에서는 기저귀와 이유식, 유모차와 두꺼운 패딩을 챙겼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 문제집과 한글책, 태블릿이 들어갑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미국에 오는 목적도, 생활 방식도, 캐리어 안의 물건도 함께 변했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미국 장기체류를 준비한다면 인터넷에 있는 준비물 목록을 전부 캐리어에 넣기보다 우리 아이의 나이, 숙박 환경, 세탁 가능 여부, 주변에서 물건을 구할 수 있는 환경부터 확인해 보는 것이 실제 짐을 줄이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캐리어 한쪽에는 조금의 빈 공간을 남겨두는 것도 권하고 싶습니다.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미국에 올 때보다 한국으로 돌아갈 때 그 공간이 더 필요했기 때문입니다.